영훈아 오랜만이야.
잘 지내고 있니?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참 궁금하구나.
나는 요즘 그때 장례식장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직준비를 하고 있어.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내가 이직을 위해 내세울 수 있는 경력이 딱히 없다 보니,
내가 어떤 회사에 다녔구나 더 깨닫게 되는 것도 있고,
경력 대신 자격증으로라도 내 능력을 설명해볼까 싶어 몇 개 자격증도 공부해보고 있다.
올해 4월에 미국 출장을 갔다가 AWS에 근무하는 고대 경영 89학번 선배님과 점심을 먹었는데,
이직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조언을 주셨어. 자기가 있을 때 도와주겠다고 하시면서 AWS 자격증도 한 번 따보라더라구.
그래서 시작한 일인데, 지금 3개월 동안 참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회사에 대한 마음이 떴고, 이제 이직을 성공할 수 있을지, 성공하지 못한다면 또 뭘 해먹고 아이들을 키우고 살지 그런 고민.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나이브하게 살아왔는지,
꿈만 꾸던 인생. 도전하지 않고, 지속하지 않고, 하루하루 계획과 포기가 반복되던 일상이 지금의 나로 결론이 났다는 생각에 슬프기도 하고,
그렇지만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힘을 내보고 있단다.
그래서, 너에게 연락을 잘 못했다. 더 좋은 모습의 친구로 너에게 기억되고 싶고, 또 그런 친구로 현재이고 싶은 마음이었겠지.
지금 내년 상반기까지, 그러니까 지금부터 8개월 이내에 이직을 도전하고, 실패하면 다른 길을 찾아보려구.
네가 가고 있는 길은 지금 어떤지 궁금하다.
나는 요즘 옵시디안이라는 메모 앱으로 내 일상을 열심히 기록하고 있어. 기록을 하다 보니, 내가 더 단단해지는 걸 알게 됐어.
왜 그 동안 기록하지 않았을까. 아니, 기록은 했지만 정리된 기록이 없었어.
기록이 없으면, 나는 역사성을 잃고 매일매일 주어진 자극에만 반응하며 살게 된다는 걸 깨달았는데,
이제는 이 기록 덕분에 정말 많은 걸 이뤄가고 있어. 그 동안 머리속이 시끄럽기만 하고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최근 한달 동안은 정말 고요한 내면 상태로 살고 있단다.
그 덕분인지, 긍정적인 에너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아낌없이 하는 사람이 됐는데,
얼마 전엔 회사에서 직원들이 뽑은 가장 좋은 사람 1위로 선정됐어. 내가 좋아지니, 내 주변이 좋아지고, 그렇게 되니 다시 내가 좋아지는 그런 일상이야.
정말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
매일 커가는 아이를 보는 즐거움, 왜 이제야 이 즐거움을 만났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구,
매일매일 육체적인 한계를 경험하는 일상이지만 행복한 기분도 한계 저 끝까지 맛보고 있다.
두서가 없지만, 두서가 없을만큼 너에게 많은 말을 하고 싶다. 이 이야기를 만나서 한다면 공덕 족발집으로도 끝나지 않을 거고, 형제집으로도 끝나지 않을 거고, 레드락으로도 끝나지 않을 거고, 계동치킨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 같구나.
그럼에도 우리에겐 우리 삶에 대한 책임이 있으니, 언젠가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하며, 종종 이렇게 메일로라도, 옛 위인들처럼 서신을 교환해보고자 한다.
그럼 너의 일상을 언젠가 한 번 들려주렴.
best regards,
윤우
[[240724 영훈이의 답장]]